아메리칸 시리즈(AD Series) 제대로 이해하기


테일러 기타에서 아메리칸 드림 시리즈의 새로운 모델이 출시되어 저는 며칠째 리뷰용 스크립트를 쓰고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며칠 동안 쓴 이 스크립트를 모두 폐기하고 처음부터 다시 쓰고 있습니다.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장점들을 주구장창 나열하는 것이 너무 없어보였고, 장점들이라고 하는 것들이 기존 테일러 기타를 사용하고 있거나, 테일러 기타를 구입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큰 장점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것이 분명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아메리칸 드림 시리즈가 미국산인 것은 맞지만 엄청나게 저렴하지도 않아서 충분히 대체 모델을 찾을 수 있는데, 굳이 큰돈을 써가며 이런저런 설명을 해야 하는 것이 도저히 좋아 보이지 않겠더라구요.

그래서 머리도 식힐 겸 넷플릭스에서 영화를 한편 봤습니다. ‘더포스트’라는 영화였는데 감독이 ‘스티븐 스필버그’더라구요. 아무리 영화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이라도 , <쥬라기 공원>, <라이언 일병 구하기> 등의 영화 제목을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입니다. 영화 산업 최초로 ‘블럭버스터’라는 개념을 도입한 것도 바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죠.

막대한 자본을 들여 스펙터클한 장면들과 공감할만한 스토리를 만들어 대중적인 성공을 이끌어내는 것은 어찌보면 헐리웃의 성공 방정식같은 이야기이지만 그것을 실제로 해내는 감독은 손가락에 꼽을 것입니다. 평론적으로 너무 대중성과 흥행을 앞세우는 감독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는 있겠지만 이것을 이정도의 퀄리티로 지속적으로 해내는 것은 아예 다른 이야기이니까요. 영화 산업의 판 자체를 바꿔버렸다는 점에서 우리는 스필버그를 위대한 감독이라고 부를 수 있게 되는 것이죠.

기타 산업에 있어서도 비슷한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처럼 테일러 기타도 위대한 기타 브랜드라고 생각하는데, 물론 이보다 더 비싸고 복잡한 수준의 기타를 만드는 제작 공방이나 제작자들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을 수 있겠지만 이정도로 대중성 있는 사운드와 명확한 컨셉, 가장 높은 수준의 품질을 엄청난 수량으로 제작할 수 있는 양산 회사는 손가락에 꼽으며, 그 정점에 테일러기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영화 이야기로 잠깐 돌아와서, 사실 제가 본 영화 ‘더포스트’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잘 알고 있는 블록버스터의 공식과는 조금 거리가 있습니다. 미국의 닉슨 대통령 시절, ‘펜타곤 페이퍼’ 폭로 사건을 다룬 ‘워싱턴 포스트’ 언론사에 관한 이야기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스필버그의 비주얼적으로 스펙타클한 영화들과는 매우 다른 분위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헐리웃에서 영화를 제작한다는 것은 정말 많은 자본이 들어간다는 것이기도 한데, 이미 흥행할 수 있는 요소들을 제쳐두고 스토리텔링과 연출력으로 승부를 보고자 하는 것은 어찌보면 무모한 도전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테일러 기타에 있어 블록버스터급 성공 방정식은 이미 테일러 기타를 성공적으로 이끈 요소들을 반복해서 사용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랜드 오디토리움 컷어웨이 라인업을 아메리칸 드림 시리즈에도 동일하게 적용해서 판매한다면 어찌보면 흥행은 보장될 수 있었겠죠. 하지만 그렇게 눈에 보이는 일을 테일러는 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아메리칸 드림 시리즈라고 이름 짓게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영화를 만듦에 있어서 본질은 이야기를 흥미롭게 이끌어내는 연출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비주얼적인 요소들은 그것들을 돋보이게 만드는 장치이며, 그것이 연출력보다 앞서 나아가게 된다면 영화는 그저 그런 상업 오락 영화가 됩니다.
2020년 처음 선보인 테일러의 ‘아메리칸 드림’ 시리즈는 1974년 테일러 기타가 설립된 작은 기타 상점의 이름을 따왔습니다. 1974년 당시엔 당연히 지금처럼 막대한 자본력과 그를 바탕으로 설계된 정교한 공정 같은 것은 분명히 없었을 것입니다. 좋은 기타를 만들고자 한 로버트 테일러의 열정이 그 어떤 것보다 컸을 것이고, 가지고 있는 유일한 것이었기에 마치 초창기의 스필버그처럼 그 본질을 다듬는데 집중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메리칸 시리즈는 조금 더 간결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을 것입니다. 흥행적인 요소는 테일러 기타의 본질을 이해하는데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그리하여 그랜드 오디토리움 컷어웨이 바디 형태를 과감하게 사용하지 않고, 초기 테일러 기타가 가지고 있던 사운드에 대한 다양한 시도와 노력을 표현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리고 그 헤리티지를 보여주기 위해 미국 생산을 택했습니다. 그러니까 여느 홍보 문구처럼 ‘가장 저렴한 가격에 만날 수 있는 미국산 테일러 기타’라고 단순히 치부해서는 안됩니다.

아메리칸 드림 시리즈는 크게 세가지의 바디 형태로 출시되고 있습니다. 빈티지한 형태의 슬롭숄더 드레드넛 사운드를 테일러 식으로 표현한 ‘그랜드 퍼시픽’ 바디, 그랜드 오디토리움 바디보다 작아 더 빠른 반응성과 선명한 음색을 가진 ‘그랜드 콘서트’ 바디, 그리고 미니기타 사이즈인 ‘그랜드 시어터’ 바디입니다. 각각의 사운드는 테일러의 소리를 가졌지만 그랜드 오디토리움 컷어웨이 바디의 사운드는 아닙니다. 어떤 것은 기존 테일러의 이미지보다 더 풍성하면서 두터운 음색을, 어떤 것은 더 명료하고 청량한 음색을, 그리고 가장 편안한 연주감을 가졌지만 모자름이 없는 사운드를 가지고 있습니다.

시트카 스프루스 상판에 월넛 측후판을 적용한 신 모델들은 테일러가 가진 우디하면서도 청량한 사운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다양한 연주자들의 수많은 요구를 채워주기 위한 요소들이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핑거스타일 류의 연주 스타일이 현재는 보편화되기는 했지만 아직까지도 플랫탑 스틸 스트링 기타에서 12프렛 이상을 연주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컷어웨이 옵션을 뺌으로써 그 공간만큼 울림을 채워 넣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토바코 선버스트 컬러가 올라간 매트한 질감의 얇은 피니시는 목재의 불안정한 진동을 제어해주고, 외부적인 온습도 변화에 의한 변형을 줄여줄 정도로만 칠해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고급스러운 외관을 선택하기 보다는 기능적인 부분에만 충실한 느낌을 받습니다. 현재 테일러의 안정된 사운드를 담당하고 있는 V-Class 브레이싱 설계와 GT바디의 C-Class 브레이싱은 이러한 특징들과 만나 표현이 극대화 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테일러의 아메리칸 드림 시리즈는 테일러가 원래 하고 싶었고, 가장 자신있어 하는 부분을 대중에게 보여주기 위해 만든 목적이 강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반드시 흥행과 직결되지 않을 수 있고, 때로는 존재 자체가 의미있을 수도 있습니다. 스필버그의 영화 ‘더포스트’가 그러했듯, 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반드시 꿈과 희망과 장밋빛 미래를 보여주거나 보장해줄 필요는 없기 때문이지요.

아마도 아메리칸 드림 시리즈가 테일러의 메인 시리즈가 될 확률은 매우 거의 없어 보이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충분히 매력적인 악기들이고, 제가 넷플릭스에서 영화를 발견했을 때처럼 우연히 만나게 되었을 때 누군가에게는 인생 기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충분히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