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프렛 연주가 극도로 편안한 커스텀샵,
마틴 CS-SC-2022


2020년 봄, 마틴은 새로운 바디 형태가 적용된 신모델을 발표합니다. 전통을 가장 중요시하는 마틴에게는 다소 파격적인 형태의 모델이었는데요, 그동안 새로운 목재나 새로운 소재의 사용들은 많이 있었지만 디자인만은 이전 방식들을 따르는 것이 마틴의 특징이었는데, 이 모델은 기존의 제작방식이나 형태에서 많이 벗어난 새로운 하이브리드 모델이었습니다. 바로 SC-13e입니다.

어쿠스틱 기타와 일렉트릭 기타의 특징들을 모아놓은 마틴의 SC 바디는 비대칭형 바디 구조에, 마치 일렉기타 넥 접합 방식을 연상케하는 넥조인트 방식, 일렉 기타와 유사한 연주감을 가진 넥 쉐입 등으로 출시 이후 정말 많은 주목을 끌었습니다.
사실 비슷한 시기에 펜더에서 출시한 ‘어쿠스타소닉’과 같이 어쿠스틱-일렉트릭 하이브리드 모델이 유행인 시기이기도 했고, 각 브랜드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선에서 플랫탑 스틸스트링 기타 유저와 솔리드 바디 일렉 기타 연주자 모두를 사로잡을 수 있는 모델의 성공은 새로운 장르를 열었다는 점에서 기업의 매출 증대를 위해 필요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프로 연주자들이 기타를 두대씩 들고다니지 않아도 된다니 생각만 해도 멋지지 않습니까.

그런데 말입니다. 결과적으로 저는 이 작전이 처음부터 실패할 것을 알고 있었고, 실제 출시한 악기를 보고 그 확신이 들었습니다. 좋은 것과 좋은 것을 더하면 더 좋은 것이 될 줄 알았겠지만 이는 마치 짜장면과 짬뽕을 각각 좋아하는 사람에게 둘을 섞은 것을 주는 꼴과 다를 바 없었으니까요. 결국 이도 저도 아닌 것이 되어버린 것이죠.

먼저, 일렉기타를 주로 연주하는 사람에게 이 악기는 매우 불편합니다. 먼저 마틴이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편안한 연주감인데요, 일렉기타를 연주하는 사람들에게 마치 그랜드 퍼포먼스 바디를 연상케하는 몸통 크기는 익숙하지 않을 뿐더러, 이는 평소 연주하던 자세와 많은 차이를 보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인체공학적인 넥 쉐입은 나쁘지 않지만 이 악기는 듣도 보도 못한 13프렛 조인트 넥에 프렛도 20개뿐이라, 포지션도 이상하고, 음도 일렉기타에 비해 많이 제한적입니다. 많이 양보해서 일렉 전용 앰프에 연결해서 사용 가능하고, 좋은 음색을 낸다고 가정해도 이는 일렉기타 연주자들의 특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행동입니다. 일렉기타 연주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고유의 음색’이기 때문입니다.

통기타 연주자들이 마틴, 테일러, 깁슨과 같은 악기를 선택하는 이유는 그 브랜드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음색으로 곡을 표현하기 위함이 큽니다. 마찬가지로 일렉기타 연주자들이 펜더나 깁슨을 선택하는 이유도 그 악기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음색이나 뉘앙스를 사용하기 위함인데, 마틴 SC-13e에서 사용하고 있는 L.R.Baggs나 Fishman의 소리가 사용하기에 괜찮다고 할지라도 펜더나 깁슨 음색과 비교하면 전혀 다르죠. 왜 프로들이 공연장에 일렉기타를 두대씩 들고다니는지, 펜더의 빈티지 싱글 코일 픽업이나 깁슨의 오리지널 파프 픽업에 환장하는지 한번이라도 생각해봤으면 이런식의 픽업 구성은 사용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통기타를 주로 연주하는 사람들은 이 악기를 어떻게 생각할까요? 앞서 이야기했듯 마틴 기타를 공연장이나 레코딩에서 사용하는 이유는 마틴 고유의 음색으로 곡을 표현하기 위함이 큽니다. 그러니까, 마틴의 음색이 가장 짙게 뭍어나오는 기타를 사용하기 원하겠죠. 마틴의 SC 바디 모델이 마틴의 사운드가 아니라고 이야기하기는 어렵겠지만, 마틴 드레드넛이나 OM바디와 같이 전형적인 마틴 음색과는 거리가 조금 있습니다. SC바디를 구입하기엔 이런 목적에 더 적합한 대체품들을 정말 많이 고를 수가 있죠.

그럼 이 기타는 실패작일까요? 이 모델은 앞서 이야기한 듯 모든 연주자들에게 외면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일까요? 저는 애초에 이 악기의 포지셔닝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악기는 일렉트릭 기타의 속성을 가지고 있지만, 일렉트릭 기타 연주자를 위한 기타가 전혀 아닙니다.
이 모델은 ‘극도로 편리한 컷어웨이 기타’이고, 마틴이 가장 부족했던 컷어웨이 바디에 대한 욕구를 무한정으로 풀어줄 수 있는 기타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부분들을 극도로 끌어올린 모델이 바로 오늘 소개해드릴 CS-SC-2022 모델인 것입니다.

실제로 연주해보면 이 악기는 정말 편한 연주감을 가진 악기입니다. 특히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컷어웨이 부분에 있어서는 현재 출시된 그 어떤 브랜드보다 편안하게 모든 지판을 이용할 수 있게 설계되었습니다. 바로 슈어 얼라인 리니어 도브테일 넥 조인트(Sure Align Linear Dovetail Neck Joint)라고 부르고 있는 컨투어 넥 힐 접합 방식 때문입니다.

바디와 넥을 접합하는 일반적인 방식은 넥의 힐부분 안쪽과 몸통의 윗부분을 끼워서 접합하는 도브테일 방식을 사용하고 있는데, 12프렛 전후로 힐이 두꺼워지는 형태를 갖기 때문에 그만큼 안정성 면에서는 뛰어나지만 하이프렛 연주시 이부분이 걸리게 되어 불편하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틴의 SC바디는 일렉기타에서 사용하는 볼트온 접합방식을 개량한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힐을 없애고 바디의 접합 블록의 모서리를 깎아놓은 형태로 제작하여 손이 프렛 끝부분까지 편하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컷어웨이 어쿠스틱 기타 중 이보다 더 하이프렛 활용도가 높은 모델은 찾아보기 힘들 것입니다.
해당 모델에 적용되어 있는 ‘Low Profile Velocity’ 넥 쉐입 역시 마찬가지로 44.5mm 너트 너비의 기타에서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편안한 연주감을 선사합니다. 지판 두께가 일반적인 어쿠스틱기타보다 얇게 설계되었는데, 부피감을 줄여 손의 피로도를 낮추고, 손가락이 짧은 분들도 거부감 없이 연주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있습니다.

마틴 CS-SC-2022모델에 적용되어 있는 브레이싱 패턴과 모양은 일반적인 모델과 조금 다르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는 공연장에서 큰 볼륨으로 연주할 때 앰프 소리가 사운드홀 안쪽으로 다시 들어가서 생기는 하울링 같은 피드백을 최대한 줄일 수 있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인데요, 공기 역학적으로 소리가 흐르고 있는 방향을 일반적인 기타와 다르게 만들기 위해 후판에도 X 브레이스가 붙어있고, 상판 역시 비대칭으로 설계가 되어 있습니다.

SC바디의 최고 등급답게 소리를 구성하는 재료들도 최상급 재료들이 사용되었는데요, VTS가 적용된 시트카 스프루스 상판과 인디안 로즈우드 측후판, 모던디럭스 시리즈에 적용된 리퀴드 메탈 브릿지핀은 마틴 음색에 모던함을 더한 모던디럭스 시리즈를 연상케 합니다.

이 모델의 음색은 마틴 특유의 깊은 맛도 있으면서도 전체적으로 음의 분리도가 높은 것이 특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음의 분리도가 높은 악기일수록 스트럼 스타일보다는 핑거스타일이나 아르페지오, 솔로 연주같은 스타일이 잘 어울리는데, 이 악기는 그런 부분에 있어서 정말 탁월합니다. 피시맨 사의 고성능 픽업인 아우라 VT 블렌드 픽업이 장착되어 안정된 피에조 사운드와 공간감 역시 잘 살려주고 있습니다.

디자인 적으로도 마틴기타의 형태를 따르고 있으면서도 헤드스탁이나 지판 커스텀 인레이같이 화려한 포인트들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그밖에도 유러피안 플레임 메이플 바인딩이나 슬로프 모던 벨리 브릿지, 청자개로 제작된 로제트나 퍼플링 등은 고급 기타를 보는 즐거움을 줍니다.

마틴의 SC바디, 그리고 CS-SC-2022 모델은 목적이 분명한 악기이고, 모두를 만족시킬만한 모델이 아닙니다. 통기타 연주자 중 하이프렛의 사용 빈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만족도는 올라갈 것이고, 그렇지 않은 분들에게 이 악기는 보기에만 좋은 그저 그런 비싼 모델이 될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물건이 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제품의 쓰임새를 정확하게 분석하고 소개하는 저 같은 사람이 필요한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