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100대 한정판,
마틴 DSS Hops & Barley 홉스 앤 밸리

오늘 소개할 기타는 조금 특별한 기타입니다. 마틴은 정규라인 외에 특별한 이벤트 등을 기리기 위해 한정판 모델들을 제작하고는 하는데, 오늘 소개드릴 모델이 바로 이런 한정판 모델이기 때문이죠. 오직 100대만 제작된 한정판 모델, 바로 마틴 DSS Hops & Barley입니다.

마틴 DSS Hops & Barley, 말 그대로 ‘홉’과 ‘보리’를 지칭하는 이 모델은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홉과 보리를 형상화한 인레이 디자인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홉’과 ‘보리’라… 무언가 연상되지 않나요? 바로 맥주를 만들 때 빼놓지 말아야 할 주 재료인데요, 마틴은 왜 이름을 ‘맥주 기타’가 아닌 ‘홉과 보리 기타’로 지었을까요?

혹시 ‘맥주순수령’이라는 단어를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1516년 독일 바이에른 지역의 영주 빌헬름 4세가 맥주를 만들 때 물, 보리, 홉 이외에는 아무것도 넣지 말라고 공표한 법입니다. 사실 이전에는 독특한 맥주를 만들기 위해 종이 조각이나 물고기 부레, 심지어 사람 손가락까지 넣어 만드는 사람도 있었는데, 어찌보면 식품위생법이나 다름없는 이 법 때문에 대부분의 양조장들이 주어진 재료만 가지로 맥주의 질로 승부하게 되었고, 양조 기술도 한층 발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순수한 좋은 재료를 가지고, 만드는 사람의 역량을 극한까지 끌어올려 품질을 높이는 일은 비단 맥주에만 해당되는 일은 아닐 것입니다. 악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다양한 악기가 있지만, 기타도 원형에 가까운 모양을 예전부터 사용해왔던 방식과 동일한 재료를 가지고 아직까지 만들고 있죠.
마틴기타는 특히 자체적으로 제작한 바디 형태, X브레이스의 설계, 니트로셀룰로스 피니시 등 100년이 넘은 제작 방식과 당시에 만들었던 디자인, 오리지널에 최대한 가까운 재료 등을 아직까지 고집하고 있는 양산형 회사로 가장 유명합니다.

따라서 단순히 ‘맥주’라고 이름을 붙이기엔 이런 장인정신과 고집을 표현하는데 있어 너무 포괄적인 개념일테고, 가장 중요한 근본 재료인 ‘홉’과 ‘보리’를 통해 이를 말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한가지 더 중요한 공통적인 특징이 있는데요, 바로 독일과 독일계 이민자들이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점입니다.

맥주는 19세기 산업혁명 시기에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됩니다. 그 중 독일의 과학자 ‘카를 폰 린데’는 1870년 기계적 방법에 의한 온도저하에 관한 논문을 발표합니다. 저온공학 발달에 공헌한 그의 기술은 냉동기를 발명하게 되었고, 겨울에만 만들 수 있었던 하면발효 맥주를 계절에 관계없이 양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독일은 지금의 형태인 맥주를 대중적으로 전파시킬 수 있었고, 이때 미국 세인트루이스로 이민을 간 독일 이민자 ‘아돌퍼스 부쉬’는 미국하면 떠올릴만한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맥주 브랜드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바로 ‘버드와이져’입니다.

1879년 그가 설립한 회사 앤하이저 부쉬는 저온 살균법을 사용한 최초의 미국 양조장이 되어 미국 전역으로 맥주를 상하지 않고 이동할 수 있게 됩니다. 또한 저온살균 인공냉장, 냉장 철도 차량, 선로 옆 아이스 하우스와 같은 신기술을 사용하여 버드와이저를 전국적으로 유통할 수 있는 최초의 브랜드로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기술과 마케팅을 발전시켜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맥주 생산 유통회사가 된 것이죠.

이는 마틴 기타의 역사와도 굉장히 유사합니다.
1833년 독일의 이민자 ‘크리스챤 프레드릭 마틴’이 설립한 회사인 ‘마틴’은 앤하이저 부쉬가 만든 ‘버드와이저’와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이 두 회사 모두 독자적인 기술을 개발하고 발전시켜왔고, 그들이 가진 헤리티지를 마케팅 포인드로 잘 활용하여 해당 브랜드를 소비하는 사람들 모두 자부심을 느낄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특징은 대중성을 가졌다는 점입니다.

맥주는 물과 차 다음으로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마시는 음료이자 술입니다. 역사 또한 가장 오래되었는데요, 기원전 4000년경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인들에 의해 탄생했다는 설을 가진 맥주는 10세기 이전까지는 지금의 형태가 아닌, 곡물을 분쇄한 다음 물을 넣고 발효시킨 걸쭉한 형태였습니다. 걸쭉한 죽의 형태를 항아리에 넣고 맑은 부분만 빨대로 꽂아 빨아먹는 모습이 담긴 고대 자료를 찾아볼 수 있죠. 이후 유럽으로 건너가 중세시기와 현대 산업혁명 시기를 거쳐 대량생산과 유통이 가능해지면서 전세계의 다양한 종류의 맥주를 매우 합리적인 금액으로 마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애초에 태생 자체가 농경생활을 하게 되면서 가장 쉬운 방법으로 만들어 먹었던 대중적인 음료였으며,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가장 대중적으로 소비하게 된 술이라는 것입니다.

통기타도 마찬가지이죠. 우리가 클래식기타라고 부르는 나일론 스트링 기타와는 달리, 스틸 스트링 기타는 대중음악의 발전과 함께 성장했고, 오늘날까지도 대중적으로 가장 많이 소비되고 연주되는 대표적인 악기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태생 자체가 고급 문화를 향유하는 일부 계층을 위한 클래식 음악이 아닌, 대중을 위해 개발되고 발전된 형태의 악기인 것입니다.

따라서 까다로운 재료와 이를 계승하고자 하는 ‘장인정신’, 독일계 이민자 출신에 의해 만들어져 결국 미국을 대표하는 브랜드가 된 그들의 ‘헤리티지’, 그리고 가장 보편적인 ‘대중성’까지 함축되어 있는 아주 상징적인 모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왜 마틴이 이 모델의 이름을 ‘홉’과 ‘보리’로 지었는지 이해 되시나요? 물론 여기까지의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제 뇌피셜입니다.

악기의 스펙 간단하게 짚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DSS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악기는 슬롭 숄더 드레드넛, 그러니까 어깨가 동그랗게 쳐진 모양의 드레드넛 바디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상판은 마틴에서 한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싱커 레드우드라는 목재가 사용되었는데요, 레드우드 계열은 보통 시더의 성질을 닮았다고 이야기하지만 정식 학명은 시더와 전혀 다른 수종입니다.
일반적으로 많이 볼 수 있는 웨스턴 레드 시더보다 평균 건조 중량이나 탄성 계수 등에서 더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으며, 스프루스와 비교했을때는 평균 건조 중량은 비슷하지만 탄성 계수는 더 낮습니다. 여기서 더 주목해야 할 점은 물속에 오래 잠겨있었던 레드우드라는 것인데, 일반적인 레드우드보다 무게가 더 무거워지고 더 강하고 단단해지는 성질을 갖기 때문에 시더보다 더 얇게 가공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그로 인해 일반적인 스프루스보다 더 폭발적인 음량과 극도로 섬세한 반응성을 갖게 되는데요, 자연적으로 얻을 수 있는 수량이 극히 제한적이기 때문에 가격이 매우 비쌉니다. 마틴이 스프루스 계열의 목재 이외의 목재를 사용했다는 점은 이 모델에 대해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측후판 역시 일반적인 목재가 아닌 플레임드 월넛이 사용되었는데요, 마틴 본사 설명에 따르면 코아와 마호가니 사이의 톤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실제로 연주해보면 코아의 풍부한 배음, 마호가니의 미드레인지, 그리고 깊이를 알 수 없는 공간감 있는 사운드를 보여주는데 정말 오묘합니다. 마틴은 분명히 맞는데, 이전 마틴에서 들어본 적이 없는 사운드같아요.

그리고 외관상 놀라운 점은 바로 픽가드 부분인데요, 과테말란 로즈우드로 되어 있는 픽가드가 자세히 보면 상판 위에 접착되어 있는 형태가 아닌, 픽가드 모양을 그대로 파서 집어넣은 형태로 되어있습니다. 따라서 로제트의 보리 이파리가 픽가드까지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그밖에도 헤드, 지판, 브릿지, 힐캡, 백스트립 인레이까지 기존 마틴에서 한번도 본적 없는 커스텀 자개들이 누가봐도 특별한 모델임을 알 수 있게 만듭니다. 눈에 잘 보이진 않지만 천연 아교 접착제 사용, 리퀴드 메탈 브릿지핀 사용과 손으로 잘 깎은 편안한 질감의 모디파이드 로우 오벌 넥 쉐입은 전체적인 완성도를 높여주고 있습니다.

이 모델은 전세계 100대 한정이면서 고급스러운 특별한 디자인의 악기라고 단순히 생각하기엔 함축적인 의미가 너무 많습니다. 단순히 비싸고 좋은 모델을 구입하기는 어찌보면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작자가 숨겨놓은 의미와 그에 대한 해석을 발견했을 때 어쩌면 2000만원이 넘는 금액 이상의 가치를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요?